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 가? 조각나 버린 글로벌의 꿈
- 유재일

- Oct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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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버블의 근원으로 전락했다.
지금 우리가 가진 지분 중에 가장 크게 부풀려 진 것이 국가다.
국가가 가진 가치보다 국가에서 더 많은 걸 뽑아먹으려 하는 일명 만국의 민주시민들이 쏟아내는 무한대의 요구가 국가를 빚덩어리로, 경제를 버블로 키우고 있다.
투표권 한 장의 가치가 마구 올려 쳐지며 포퓰리즘은 자본주의의 근간인 신용을 붕괴시킨다. 신용이 붕괴하면 우리의 계좌가 수축된다. 그게 공황이다.
공황은 모든 축적을 붕괴시키고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든다. 그 절망 앞에서 인간은 전쟁을 선택해 왔다.
자유무역은 상품 경쟁력이 있는 국가가 원한다. 영국이 그랬다. 영국은 금본위제를 만들고 다른 국가들에게 금태환을 강요했다.
금을 잃은 국가의 화폐가치는 떨어지고 그들은 구매력을 상실하며 자신들이 가진 서비스와 상품을 싸게라도 팔아야 하고 그렇게 국제 무역 수지 균형은 강제된다고 주장했던 게 영국이다.
도덕으로 무장한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 노예 노동보다 더 싸고 효율적인 임금노동 시스템을 고안한다. 그 후, 노예제를 폐지하고 자신들의 해상력으로 세계의 상선들을 검문 검색했다. 세계의 바다에서 노예 무역선은 돌아다닐 수 없다고 선언했다. 노예 무역을 금지하고, 보호 무역을 저지하며, 자유무역을 설파했다.
은의 시대 무역 수지의 적자는 대 중국 아편 판매로 틀어막았고, 금 본위시대를 열고 나선 금광과 세계 무역과 금융을 통제했다. 언제나 금은 영국으로 흘러 들었고 영국은 삼각 무역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을 촘촘히 짰다.
그랬던 영국은 1931년 무너졌다. 스스로가 금태환을 거부한 것이다. 그렇게 영국이 만들어 놓은 세계 질서는 붕괴했고 패권국으로써 영국의 시대는 끝이 났다.
1931년 9월 그 가을의 서늘한 선언 이후, 세계는 대공황과 세계 전쟁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 갔다. 패권의 부재에 더해진 보호무역과 블록경제는 세계를 더더욱 암흑으로 몰고 갔다.

고무와 석유 두 자원은 자동차 산업, 석유화학 공업, 중공업의 필수 원자재였지만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세계에 골고루 있던 석탄과 철광석과 달리 석유와 고무는 특정 지역에 편중되어 있었다.
식민지 대신 화학산업 발전을 선택하며 독일은 합성고무, 석탄을 액화시킨 석유를 확보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식량, 자원, 시장, 노동력을 모두 확보해야 한다는 독재자의 강박관념이 세계전쟁으로 이어졌다.
일본이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진 핵심 원인 역시 공황 극복할 수단의 상실이다.
레이온의 개발 및 생산이 영미에서 시작되고 세계 대공황이 덮치자 실크 가격은 1/4 수준으로 폭락한다. 일본 농촌의 소득원이자 주력 수출 상품이 실종되자 일본경제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
1차 대전 중 수출이 가능했던 중국과 동남아 시장을 영국과 프랑스가 장악하고, 전통적으로 서구에 수출하던 실크 가격마저 폭락하자 일본 경제는 쑥대밭이 된다.
일본은 1차 대전 특수 이후, 다시 축소되는 시장에 적응을 못했고 동남아 중국을 아우르는 경제권을 원하게 된다. 쇼와 공황과 1차, 2차 세계대전 사이 일본 금융 시장의 혼란은 지금의 세계 상황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중앙은행과 국채는 전쟁수행의 핵심 기구다. 출범을 그렇게 했다.
1913년 연방 준비법이 통과되고 연준(Federal Reserve System)이 출범한 이후1917년 전쟁 채권을 연준이 대규모 구매한 것이 20세기 이후 자본주의의 근본 질서가 됐다.
연준은 발권을 통해 미 채권을 구매하며 시장이 흡수하지 못한 채권을 모조리 흡수한다. 연준은 재무부 채권을 보유하며 근본 자산으로 삼고 재무부가 지급하는 이자로 기관을 운영하고 남는 돈은 재무부에 환류 시켜준다.
연준도 결국 윌슨(Woodro Wilson)이 만든 것이다. 윌슨과 재무장관 매커두(McAdoo)는 미 국채를 연준의 담보자산으로 편입시켰고 금과 상업어음만을 매입하던 연준이 완전 새로운 역할을 부여 받은 것이다.
상업은행들이 리버티본드(Liberty Bond)를 사들였고 그들이 자금이 필요하면 연준은 할인을 해줬다. 연준은 미국채를 살 때도 발권을 허가 받은 상태였으니 은행들은 무제한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전체 리버티본드의 15퍼센트 정도를 발권으로 할인을 통해 사 모으면 85퍼센트 이상의 자금을 정부는 끌어 모을 수 있었다.
전체 GDP의 30퍼센트에 육박하는 국채를 이 방식으로 팔 수 있었고 이 자금으로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을 치룰 수 있었다.

이 국채 발행 방식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근본 질서가 됐다.
대통령과 재무장관이자 장인과 사위인 이 두 사람이 국제 금융질서의 근본을 만들었고, 이 둘이 중심이 된 윌슨 정부는 민족 자결주의, 항행의 자유, 열린 시장을 다자주의 질서로 만들자고 세상에 제안했다.
미국은 패전국에게 이야기했다. 이제 너희도 장벽 없이 석유를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너희는 우리 시장에 물건도 팔 수 있고, 우리는 너희에게 배상금도 물리지 않을 것이며, 너희를 식민지로 만들지도 않고 경제 재건을 위해 원조도 할 것이다. 독일, 일본, 너희 둘은 나의 동맹으로 다시 태어나라!
그렇게 미국은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보다 일본과 독일의 경제와 더 유착됐다. 일본과 독일은 야욕을 버리고 열심히 상품을 만들어 내었다.
미국이 승전 후 선언한 세계 질서는 달러의 제국 미국과 상품의 제국인 일본과 독일 그리고 상품 제국의 철저한 정치적 종속 즉, 자유무역을 원하는 달러 제국과 상품 제국 사이에 위계가 있고 그 위계로 유지되는 질서, 이게 바로 우리가 살아온 질서이다.
1945년 이후의 이 질서는 몇 번의 파고를 넘어 페트로 달러의 질서로 이어졌다. 페트로 달러 질서는 미국을 1극으로 하고 그 옆에 딱 달라붙어 있던 바스켓 통화들이 함께 누린 질서다. 그들은 강대국이란 이름 하에 국제통화로 군림해왔다.
단, 2000년대 이전까지만…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모든 걸 뒤틀어 놓았다.
연준이 전쟁 수행을 위해 채권을 흡수하고 발권을 통해 통화량을 늘려온 것이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전쟁을 치루지 않아도 정부가 만성 적자 상태에 빠진 시스템이 각 국에서 저마다의 사정으로 탄생한다.
유럽은 계속해서 복지 지출을 확대했고 미국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최후 대부자로 구제금융을 실시하고 큰 규모의 양적 완화를 실시한다.
이런 상황은 미국의 달러 발행이 세계 질서의 근본임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미 채권을 사며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도약은 시도하던 중국이 달러 발권 질서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2012년 집권한 시진핑은 2015년 중국 제조 2025를 발표한다.
독일이 인더스트리 4.0을 선언하자 중국도 1티어 제조업 국가로 도약하자는 선언을 한다.
“제조업 대국에서 제조업 강국으로,” 시진핑의 슬로건은 단순했다.
그리고 여기서 사고가 터진다. 바로 인공지능의 도약이다.

시진핑이 집권하던 2012년 세계는 컴퓨터가 이미지를 인식하는 기술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고양이와 개를 구분하지 못하는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연구가 한참이었다. 토론토(Toronto) 대학교 제프리 힌튼(Geoffrey E. Hinton) 교수팀의 알렉스넷(AlexNet)이 이미지 인식 경진대회(ILSVRC-ImageNet Large Scale Visual Recognition Challenge)에서 우승했을 때 그 연구팀도 그리고 세상도 그 파급이 어느 정도가 될 지 알지 못했다.
컴퓨터 비전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알고리즘을 능가할 새로운 매커니즘의 탄생, 바로 딥러닝, 심층 신경망 네트워크가 탄생한 것이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클라우드 컴퓨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이미지, 텍스트, 동영상이 학습데이터로 쌓이기 시작했다. 모바일 클라우드가 제공하는 빅데이터와 딥 러닝의 만남은 인류의 도약을 의미했다. 컴퓨터 이미지 처리 가공을 담당하던 GPU는 바로 딥 러닝의 중추적 도구가 되었다.
이 시대적 도약과 중국의 제조업 강국 도약의 열풍이 맞물렸다. 시진핑의 공산당은 미친듯이 공대생을 육성하기 시작했고 애플, 테슬라등의 중국 현지 공장은 중국의 고부가가치 생산 라인의 기틀을 만들어줬다.
협력 업체 네트워크 속 국가적 열망의 프런티어가 된 공대생들은 새 시대를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다는 일념 하에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했다. 중국의 선진화는 자신들의 손에 달렸고 자신들의 부귀영화도 이루어진다는 신념 하에 그들은 도약에 도약을 멈추지 않았다.
처음엔 디스플레이,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석유 화학 등에서 제조강국으로 도약하고자 했던 중국이 단숨에 인공지능과 로봇에서 세계 제1국가의 위치로 점프를 할 야망을 보이기 시작했다.
달러 제국 미국과 제품 제국 중국이 공히 자유 무역 시장을 함께 원했고 차이메리카의 시대를 이끌었으나 두 국가의 동행은 2010년대를 기점으로 완전 두 쪽이 나고 말았다.
중국은 유튜브, 페이스북, 안드로이드등 미국의 플랫폼 산업을 모조리 축출했다. 화웨이, 알리바바, 틱톡, 테무 등이 이끄는 중국 자체의 플랫폼 환경의 조성, 그리고 인공지능과 로봇이 발달하면서 자신들의 상품이 절대 경쟁력을 가진 상태에서라면 미국의 달러 제국을 인정할 의사가 없는 중국…결국 충돌하고 마는 두 국가이다.

중국 제조 2025 선언 후, 약속한 2025년이 오자 중국은 미국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생산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인공지능 기술은 지속적으로 도약하고 있으며 전기자동차는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또한, 이차전지 시장과 신재생에너지 시장을 석권했고 철강, 석유 화학 등은 이제 그 어떤 국가도 넘볼 수 없는 수준의 생산 능력을 확보했다.
양과 질에서 압도적인 제조국가임과 동시에 그들에게 석유를 공급해 줄 러시아를 동맹으로 확보했다.
이제 시진핑은 석유를 가진 히틀러, 아니 그 이상의 능력을 확보한 미국의 적수다.
지금 미국과 서방 선진국은 전쟁은 커녕, 그 어떤 내핍도 감내할 의사가 없다. 제조 역량을 확보하고 전쟁 시 필요한 물질의 생산, 병기의 생산을 감내할 준비가 더디다.
만불짜리 가방이 아닌 만불짜리 드론을 만들어야 할 상황인데 그런 장인 정신은 발휘할 생각이 없다. 재정 상황은 평화시에 전쟁을 겪고 있는 것 마냥 국채를 소진해 정작 전시채를 판매할 능력도 없으며 물질적 기반이 아닌 도덕적 명분에 더 빠져 있다.
중국, 러시아, 북한이 이를 갈고 무기를 만들고 세계를 제패하고자 하는데 지금 뭔가 나사가 빠진 서방선진 진영이다.
지금 다시 배부른 돼지를 사냥하는 북방 유목민들 같은 존재가 돌아오고 있다.
코인 팔아먹기 바쁜 지도자들과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확실한 물질적 우세를 확보하기도 전에 칼을 뽑은 지도자들…
시진핑, 푸틴은 자신들 후계자들이 과업을 이어 나갈 거라 믿지 않는다. 푸틴은 고르바초프와 옐친은 자국의 디폴트로 생각하고 자신을 구원자라 생각한다.
시진핑 또한 후진타오와 장쩌민은 중국의 전사들이 아니었다 생각한다. 자신이 중화 민족 영광의 부활을 이끌 지도자고 자신이 끝장을 보지 않으면 중화민족은 다시 미국 가랑이 사이로 기어들어간다 생각한다.
시진핑과 푸틴이 가지는 역사의식, 그리고 그 광기어린 사명 앞에서 지금 트럼프와 서방진영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동맹국의 협조와 미국 국민의 협조를 이끌어야 할 미국의 리더는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 역조를 동맹국 탓으로만 규정한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달러가 먼저, 그리고 그 이후에 코로나 사태 때 또 한 번, 강대국들은 고통을 이웃 국가들에게 전가했다. 국제 통화 팽창은 기어코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고 이자율이 오르자 미국과 프랑스, 영국에서 국채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1945년 체제의 강대국들이 1945년의 약속을 저버렸고 제로 금리는 너나 없는 국채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지금 인플레이션과 이자율 상승의 이 상황에서도 우리는 국가에 대한 국민의 책임을 이야기하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
전쟁을 치루지 않고도 전쟁에 준하는 재정적자를 평상시에도 유지해온 서구 제국들이 2025년 현재 위기로 빨려 들고 있다. 영국, 프랑스, 미국이 그러하며 산업과 부동산의 최종대부자 역할을 하는 중국이 그러하다.
평시에 재정 규모 안에서 지출을 해야 하고 적자를 보아도 성장률을 넘어서면 안 된다는 그 근본 수칙을 너무 쉽게 다들 어겨왔다. 빚은 결국 위기의 원흉이 되고 중앙은행의 발권엔 한계가 있다는 걸 다들 잊은 것이다.
채권위기와 비효율이 가득한 에너지 정책, 관료시스템, 과도한 복지정책…총체적인 모럴해저드(moral hazard)다.
유효수요 창출이란 명목 하에 너무도 무책임한 정치가 오래 이어져 온 것이다. 그 결과 80여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결핍 또는 전쟁을 겪어야 하는 상황으로 선진 제국들이 내몰리고 있다.
모두를 소비와 문화의 주체로 만들었지만 근본적으로 국가와 가정을 해체하며 달려온,
글로벌리즘(globalism)의 종말이며,
다자주의의 종말이고,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의 종말이며,
평화 시대의 종말이다.

현재 미국 연준은 미국 채권의 15퍼센트 정도를 보유 중이고 85퍼센트는 해외 정부, 연기금, 민간 은행 등이 보유하고 있다.
미국 연준의 보유량이 늘어가고 연준 이외의 플레이어들이 미채권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는 이 트렌드에서 아무도 모르는 것이 있다.
연준 보유량이 얼마가 늘면 총체적 붕괴가 시작되는가?
우리는 지금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이대로면 인류는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인류가 세계대전을 치러야 했던 근본 원인을 다시 생각하자.
그리고 이제 정치가 국가 자체를 버블로 키웠다. 전제왕권이나 하던 부채덩어리 국가를 민주시민들이 만들고 있다. 이제는 우리는 이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
UN 총회에서 이 이야기를 하는 국제 지도자가 한 명이 없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기 바쁘다.
우리는 이제 전쟁의 시대에 들어섰다. 강대국이라 믿었던 경제권에서 국가 신용이 붕괴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고 최종 대부자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근원 통화를 다시 정하고 신용 창출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붕괴와 새로운 질서 사이에 패권국을 정할 방법은?
사실상 전쟁 이외에 인류는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