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과 탈시설 그 전체주의적 경향에 대하여
- 이병훈

- Nov 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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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문재인정부는 “커뮤니티 케어와 보건복지서비스의 재편”이라는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김용익 당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새로운 커뮤니티 케어의 방향과 전략”이라는 주제로 기조발표를 하였다. 주된 내용은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의 극복을 위해, 그리고 새로운 노동력 확보의 관점에서 “감염성, 비감염성 질환관리, 정신보건, 노인, 장애, 정신, 아동” 등 모든 분야에서 인권, 효과성, 비용절감을 목표로, 중요한 전략을 탈시설화로 천명하였다. 그 결과 2026년부터 “통합돌봄서비스 사업”이 전면적으로 시행된다. 그 과정에 시범사업으로 진행된 것이 박원순 시장 때의 서울시 탈시설 정책이었으며, 그 1호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가 운영하던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의 중증장애인시설 “향유의집” 폐쇄였다. 그리고 더불어 민주당의 여러의원 등이 3대 악법이라고 불리는 장애인복지법 전문개정안, 발달장애인법 일부개정안과 10년내 모든 시설을 폐쇄를 목표로 상정한 법안이 일명 “탈시설법안” 이를 국가적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사회적실험을 하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2021년 8월에 발표한 “탈시설로드맵”이다.
이 과정에서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중증발달장애인을 포함한 700여명이 서울시에서 탈시설을 하였고, 이에 수많은 중증장애인들이 요양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 이 로드맵을 실행하기 위하여 자립연습 등으로 시설 내 입소장애인 사망률이 2021년과 2022년 1년 사이에 58%가 폭증하였고, 시설에 입소하지 못하고 절망하여 부모와 자녀가 동반자살한 건수가 3년동안 20여건에 이르고 있다.
이는 명백히 전장연 등과 이권으로 얽혀있는 단체가 국가의 권력을 등에 업고 저지른 장애인에 대한 사회실험이며, 장애인 학대이다.
1. 전장연과 탈시설 운동의 개요
(1) 전장연의 성격과 목표
전장연은 2001년 출범한 장애인 인권단체로,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평등권 보장을 핵심 목표로 한다. 이들은 장애인권리협약(UN CRPD)의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근거로, 탈시설 정책과 장애인 이동권·노동권·소득권 보장을 요구해 왔습니다.
(2) 탈시설 운동의 배경
“탈시설”이란 장애인이 시설(거주시설, 요양시설 등)에서 집단적으로 생활하지 않고, 지역사회 내에서 자립적으로 살아가도록 지원하는 정책 방향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1960~70년대 서구(특히 이탈리아, 미국)에서 정신병원 폐쇄 운동과 함께 등장했으며, 한국에서는 2000년대 이후 전장연이 중심이 되어 정책 어젠다화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중증장애인 시설 등은 단순히 ‘억압 공간’이 아니라, 중증장애인의 생존과 보호 기능을 담당해온 유일한 복합 요양서비스 제공기관이다. 이 점이 논쟁의 핵심이다.
2. 탈시설 운동의 전체주의적 경향
전장연의 탈시설 주장은 인권적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실행 논리 속에는 다음과 같은 전체주의적 구조가 잠재되어 있다.
(1) 개인의 다양성과 선택권을 부정하는 획일성
“모든 시설은 인권침해 공간이므로 반드시 폐쇄되어야 한다”는 구호는 개별 장애인의 선택과 욕구의 다양성을 무시한다. 예컨대 중증장애인 중 상당수는 시설 환경에서 안정된 돌봄을 원하거나, 가족이 없는 경우 지역사회에서의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운동은 ‘시설 = 악, 지역사회 = 선’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강요하며, 이는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나 전체주의적 사회공학과 유사한 ‘집단적 구원론’의 색채를 띄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여러 가지 논리는 사회복지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회혁명의 도구로서 장애인복지를 이용하고 있다.
(2) 공동체를 ‘권력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경향
전장연은 자율적 공동체의 상호책임보다는, 국가의 전면적 개입과 재정 책임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지역사회 자립을 주장한다. 이는 ‘국가가 모든 개인의 삶을 설계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통제적 복지 모델로 귀결된다.
결과적으로 장애인의 ‘공동체 속 삶’이 아니라, 국가에 종속된 관리체계 속의 존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피해의 책임은 장애인당사자가 고스란히 짊어지도록 설계된다.
(3) 사회적 다원성에 대한 폭력
탈시설 운동은 “우리의 방식만이 옳다”는 이념적 독점성을 보인다. 시설 종사자, 가족, 종교단체, 지역주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인권’ 혹은 ‘기득권’으로 낙인찍는 방식은 사회적 대화의 장을 폐쇄시킨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적 다원주의보다는, 정치적 투쟁을 통한 의식 통일과 적대 구도 형성이라는 전체주의적 전략에 가깝다.
3. 장애인의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의 파괴
(1) 생명권의 위협
현실적으로 거주시설에 있는 중증장애인 대다수가 24시간 돌봄 없이는 생존이 어렵다. 그러나 탈시설 정책이 충분한 지역 돌봄 인프라 없이 추진될 경우, 이들은 의료 방치, 돌봄 공백, 고립사 등의 위험에 노출된다. 즉, ‘시설에서의 인권’을 개선하기보다 시설을 없애는 선택은 생명유지권 자체를 위태롭게 만드는 정책적 폭력이 될 수 있다.
(2) 자기결정권의 왜곡
탈시설 운동은 표면상 “자기결정권”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시설에 살고 싶다”는 선택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탈시설’만이 유일한 올바른 결정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태도는 개인의 실질적 자기결정권을 부정하고, 이념적 결정권으로 대체된다. 참된 자기결정권은 ‘시설 안팎 중 어디서 살 것인가’의 자유를 포함해야 하지만, 운동은 이 선택지를 제거하고 있다.
4. 결론: 인간 존엄의 실질적 의미
장애인의 인권은 “탈시설”이라는 형식적 구호가 아니라, 각 개인이 자기 조건 속에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구체적 환경의 다양성을 보장할 때 비로소 실현된다.
전체주의는 ‘모두를 구원하겠다’는 명분 아래 개별 생명을 도구화한다. 반면 인간 존엄은 각자의 실존적 조건 속에서 관계적 자유와 보호의 균형을 인정할 때 지켜진다. 따라서 진정한 인권정책은 “탈시설”이 아니라, “선택 기반의 맞춤형 자립지원체계”로 나아가야 한다.
요약하면, 전장연의 탈시설 운동은 인권 담론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획일적 이념에 의해 개인의 다양성과 생존권을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운동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장애인의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면, ‘모두를 한 체제로 끌어들이는 운동’이 아니라 ‘각자가 존엄하게 머물 수 있는 다원적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